도란도란 :: 코로나 보다 독했던 바이러스는?

인류의 삶에 있어 인플루엔자는 주기적으로 수백, 수천만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는 학살을 감행했다. 그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기록된 ‘스페인 독감’은 인플루엔자의 악명 높은 위력을 제대로 실감케 한 독감으로 여겨진다.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인구는 1차 세계대전 전사자 900만 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으며, 중세 흑사병보다 더한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감염병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래에서는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선사한 스페인 독감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파헤쳐 보도록 하자.

 

 

스페인 독감이란 ?

 

스페인 독감은 중세 흑사병보다 더한 20세기 수많은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감염병으로 여겨진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며 1918년 초여름 프랑스 주둔 미군부대에서 처음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군 병사들이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그해 9월부터 미국에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는 1920년 6월까지 각국으로 맹렬히 퍼져 나갔으며, 극지방은 물론 태평양 도서 등 전 세계로 확산되어 2년 동안 창궐했다.

 

 

스페인 독감의 기원은?

 

스페인 독감의 기원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미국 캔자스 미군기지에서 첫 환자가 보고된 이후 각국으로 맹렬히 퍼져 나간 것만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각국에서 제기한 스페인 독감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보고되고 있다. 우선 영국에서는 1917년 프랑스 북부 도시 에테플에 있었던 영국군 임시 병원에서 스페인 독감이 발생했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이 병원에서는 10만 명의 군인들이 치료되었고, 영국군은 식량 공급을 위해 근처 마음의 돼지나 닭을 정기적으로 가져왔다. 조류에서 발생한 독감 바이러스가 돼지로 이동하여 발생했다고 가정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18년 1월, 캔자스주 하스켈 카운티의 미군 주둔지 포트 라일리에서 처음 스페인 독감이 발생했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캔자스주의 젊은이들이 독감을 앓았고, 1918년 3월에는 약 500명의 군인이 입원을 하게 된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에 파견되었는데, 이로 인해 스페인 독감이 대유행병으로 발전했다는 설이다.

 

 

스페인이 발병지가 아닌데도 왜
‘스페인 독감’으로 불려왔을까?

 

한편, 스페인으로서는 ‘스페인 독감’의 발병이 굉장히 억울한 일로 여겨졌다. 스페인 독감의 발병지는 스페인이 아닌데도 독감의 병명이 본국의 이름으로 불러져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 유럽에 걸쳐 발병한 인플루엔자의 이름 앞에 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국가의 이름인 ‘스페인’이 붙여졌던 걸까. 이는 스페인이 당시 제 1차 세계대전 참전국이 아니었으며, 당시의 스페인 언론에서 스페인 독감에 대한 전시보도 통제를 하지 않고 이 병에 관한 심각성을 그대로 다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는 제 1차 세계대전 연합국이 ‘스페인 독감’으로 불렀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스페인 독감 사망자 수는 ?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H1N1)에 의한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봄의 1차 유행, 가을과 겨울에 걸친 2차 유행으로 크게 구분될 수 있다. 2차 유행은 고병원성으로 발전한 것이 특징이며, 1918년 8월, 프랑스 브레스트,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 미국 메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독성이 더욱 강해진 스페인 독감이 출현했다. 2차 유행은 인류역사를 뒤흔든 대재앙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독감 유행 시기에 세계적으로 적게는 2천만 명, 많게는 8천만 명 정도의 인구가 독감으로 인해 사망한 것에 기인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당시 세계인구의 약 1/50에 해당하는 4~5천만 명이 독감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은 1천만 명이 사망한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었다.

 

 

무자비한 스페인 독감에 의해 전 세계 인구의 3~6% 정도가 사망했으며, 일부는 걸린 지 2~3일 만에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기록된다. 1918년과 1919년 사이에 걸쳐 2500~50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며, 이는 제 1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보다 약 3배나 많은 숫자이다. 이렇듯 제 1차 세계대전보다 더욱 많은 사망자 수를 낸 스페인 독감은 전쟁보다 극심한 고통을 안겨 주었고, 이 일을 계기로 제1차 세계대전은 서둘러 매듭지어졌다. 또 평화조약이 맺어지며 이후로는 독감 예방 접종 문화가 시작될 수 있었다.

 

 

스페인 독감의 정체,
조류독감(AI)일 수도 있다?

 

스페인 독감의 기원과 발병 원인은 아직도 미궁 속에 빠져 있으나 2005년 미군 병리학 연구소의 타우펜버그 박사 연구를 통해 스페인 독감의 정체는 조류독감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병사들이 머물던 캠프에서 기르던 식용 조류에서 스페인 독감이 발병했고, 식용 돼지에서도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오랜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병사들에게 쉽게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마이클 워러비 미 아리조나대 교수팀은 1880년부터 1900년 사이 태어난 이들이 어린 시절 H1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아 면역력이 없는 상태에서 스페인 독감 H1N1형 인플루엔자 A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최악의 사망자를 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2014년 4월 28일 발표했다.

 

 

스페인 독감은 어떻게 소멸되었을까

 

스페인 독감이 어떤 과정을 거쳐 소멸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단 하나의 추측으로는 당시 의료진들이 철저하게 방역을 하고 또 예방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으로도 인플루엔자의 소멸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스페인 독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미래에는 또 다시 모습을 바꾼 새로운 스페인 독감이 유행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인류는 그 어떤 바이러스 앞에서도 철저히 투쟁해왔으며 저항할 힘을 끊임없이 촉진해 왔다. 또한 다시는 그와 같은 재앙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플루엔자의 치료책을 찾아낼 노력들은 시간의 흐름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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