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 온난화가 변화시킨 생태계 - 육상플라나리아

최근 뉴스에서 각종 벌레들이 출몰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전국에서 여의도 면적의 21배를 덮는 규모의 매미나방이 도로와 벽에 가득하고, 서울 은평구에선 나뭇가지처럼 생긴 대벌레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보다 많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생태계에 혼란을 일으킨 이유로 기후변화를 꼽습니다. 겨울이 따뜻해 질수록 알들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이듬해 봄에 대량으로 부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폭발적인 번식을 기후변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때 꽃매미가 대량 번식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꽃매미가 대량번식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땅한 천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꽃매미가 외래종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매미나방과 대벌레는 우리나라 자생종입니다. 우리나라 생태계의 터줏대감들이 이렇게 균형을 깨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폭발적으로 번식한 매미나방과 대벌레가 한국이 아닌 외부의 개체군이거나, 외부의 개체와 교배하여 유전자가 섞인 개체군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곁으로 다가온 또 다른 생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육상플라나리아 입니다.

(좌)동네에서 채집한 육상플라나리아

 

알고 있던 플라나리아와 다르다고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계곡에 사는 민물플라나리아와는 상당히 다른 종입니다. 생김새로 봐선 차라리 고구마형 과자에 가까운 것 같네요.

전 세계 60여종이 알려진 육상플라나리아 중 제가 소개할 종은 위 사진의 주인공인 Bipalium adventitium 입니다. Bipalium adventitium는 1943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되어 명명되었습니다. 머리가 다른 종에 비해 좁고, 몸에 줄 하나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Bipalium adventitium 기재 논문

 

육상플라나리아는 지렁이의 천적이며, 토양생태계에서 거의 최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렁이는 육상플라나리아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입니다. 지렁이를 발견하면 몸으로 칭칭 감싼 뒤 배 한가운데에 있는 인두로 녹여 먹습니다. 또한 육상플라나리아는 먹잇감을 직접 사냥할 뿐만 아니라 먹잇감의 몸에서 분비되는 점액 등을 감지하여 추적하는 능력도 있다고 합니다.

육상플라나리아의 번식 또한 독특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Bipalium adventitium의 경우, 스스로 알을 낳아 새끼를 까는 무성생식을 합니다. 평균적으로 23일 후에 부화한다고 하네요. 하지만 근연종인 Bipalium kewense는 꼬리 끝을 잘라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냅니다. 이 또한 무성생식이죠. 2~3주면 성체가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온도 습도 등의 영향을 받으면 갑자기 알을 낳는 방식으로 바꾼다고 합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이렇게 엄청난 적응력이 인간에게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다양한 육상 플라나리아의 서식지를 나타낸 표입니다. 구별 항목을 보면 원래 살던 곳(native range)과 지금 사는 곳(nonnative range)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원래 살던 곳을 알 수 없는 종도 지금 서식하는 곳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가 외래종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동그라미로 표시한 뉴기니가 모식산지인 Platydemus manokwari를 예로 들면, 1년만에 기존에 서식이 확인되지 않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섬 위주로 퍼진 것을 보아 흙에 섞여 배를 통해 이동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활동적이며 적응력이 강하고, 한 마리만 있어도 어떤 방식으로도 번식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위 논문들은 각 대륙이나 국가에서 육상플라나리아의 유입을 인지한 자료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육상플라나리아의 유입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고 있으며, 프랑스의 경우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은 상태입니다. 육상플라나리아들이 지렁이를 무차별적으로 잡아먹어 농업에 영향을 준 것이죠. 

 

 

프랑스 정부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응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얼마나 어떤 종이 사는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죠. 기초연구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줄기 빛은 시민과학이었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동네에서 눈에 띈 육상플라나리아를 찍어 올리면, 학자들이 위치와 종을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것입니다. 덕분에 몇 달 만에 육상플라나리아의 종류와 서식 범위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몇몇의 연구자가 했다면 족히 몇 년을 걸렸을 일이죠. 이런 외래생물 퇴치에 시민과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습니다. 시간과 비용을 확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까지 외래생물 퇴치에 613억원을 소모했지만 배스의 개체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아까 소개했던 몸을 자를수도, 알을 낳을수도 있는 Bipalium kewense는 영국의 큐 왕립식물원에서 처음 발견되어 이름 붙여졌습니다.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이 종은 아마 식물원에서 외국의 흙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토콘드리아 게놈은 2019년에 발표되었으며, 가장 가까운 근연종의 이름은 오바마였습니다. 명명자들은 우연의 일치라는데, 개개인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정말 생태계가 순식간에 변화하는걸 요즘들어서 뉴스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데요.. 요즘 코로나가 장기화로 진행되고도있어서 무섭기도한 요즘이네요.. 다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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